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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자]/인물학습법

홍정욱 7막 7장 그리고 그 후

by 대공자™ 2011. 10. 17.

77장 그리고 그 후 - 홍정욱 / 위즈덤하우스 -

 

 

 

추천사 : 가장 푸른 지성의 아가미 - 이어령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운명은 가자미형에서 참치형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한때는 은둔의 나라라고 불렸던 한국은 산골짝에서 한유자적하는 삶을 이상으로 삼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속 100킬로로 오대양을 누비는 참치의 어군처럼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숨을 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왜 우리가 멈추지 않고 헤엄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째서 더 넓고, 더 깊고, 더 푸른 바다를 향해 지느러미를 세워야 하는지 그 본을 보여줄 사람의 모형을 찾는 일이라고 본다.

 

 

그가 한국의 젊은이로서 지금까지 해온 사고와 행동, 그리고 품성과 지혜가 바로 우리 젊은이들의 살아 있는 교과서이며, 우리의 미래를 읽는 해도와 같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젊은이들 가운데 스포츠나 예능의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일은 많았다. 그러나 홍정욱 군처럼 세계의 무대에서, 그것도 지능, 체능, 지도력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경우는 없었다.

 

 

홍정욱 군이야말로 한국이, 그리고 이 시대가 낳은 새로운 삶의 모형이다. 가장 푸른 지성의 아가미와 행동의 지느러미를 갖춘 젊은이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보여준 삶의 방식을 통해서, 숨쉬기 위해서는 잠시도 헤엄을 멈추지 않은 참치의 바다, 세계의 바다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 및 가자미의 운명을 벗어던지고 일제히 은빛 비늘을 세우고 헤엄쳐가는 빛나는 어군(魚群)으로 화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책 머리에 :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다. 나는 그런 글을 쓸 만큼 오래 살지도, 대단한 일을 해보지도 못했다. 그저 스물세 해 남짓 살아온 이 젊음에게도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에 관한 확신이 아닐는지. 삶은 여행이지 목적지가 아니라 했다. 좀 더 가득 찬 삶이기 위해 일찍 다른 길을 선택했던 것이고, 꿈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붙잡으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이 글이 동() 세대로 하여금 도피 유학이라는 서글픈 사회 현상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진정한 교육적 의미에서의 유학이라는 결단을 내리는 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변함이 없다. 또한 이 글이 후배들에게 학문적 도전이라는 포부를 가지게끔 격려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분에 넘치는 성과는 바랄 수 없을 게다.

 

 

스스로 넘어졌다고 인정하기 전에는 넘어진 것이 아니라는 믿음 - 끊임없이 걷고 뛰며, 숨 쉴 틈 없이 배우고 고뇌하고 깨달으며, 삶의 대부분을 미완성의 모습으로 보내진 않을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 쉬며 나의 젊음을 지키고자 한다. 삶과 인간을 사랑하고 고민하며,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의 영광을 남김없이 들이키기 위함이다. , 이것이 내가 도전하는 삶의 모습일진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침묵으로 계속 지켜봐주심이 어떨는지.

 

 

11: 내 운명의 주인으로

 

 

야망은 스스로를 점화하는 힘이다. 삶과 역사에 눈뜨게 하는 자각의 기()이며, 삶에의 안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는 위대한 의지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이들이 범인(凡人)과 다른 점은 그들의 지성도, 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상도 아니며 오직 더욱 원대한 야망 하나뿐이라고 오리아나 팔라치는 <역사와의 대담>에서 말했다. 만일 그런 소중한 가치를 숨겨야만 하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불복종할 용의가 있다. 꿈을 꾸며 지키는 일은, 또한 꿈을 당당히 선언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결코 건방짐도, 교만함도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 21p -

 

 

보다 굵고 위대한 뜻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삶보다는 좀 더 원대한 존재의 테두리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꿈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간다. 즉 나는 내가 꾸는 꿈에 의해 존재한다.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지만, 남보다 뛰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야망이다.

 

- 23p -

 

 

내 삶의 문이 열리고 미래가 들어선 순간은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케네디(J.F.Kennedy)를 알게 되면서였다. 위인전기를 뒤적이던 나는 우연히 <만인의 연인, 케네디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다.

 

남자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완벽한 삶이 책 속에 있었다. 학벌, 외모, 가정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젊음과 용기,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까지 있었으며, 영웅은 주로 요절하는 이들 중에 있다는 릴케의 시처럼 죽음마저 영웅적인 시간과 상황에서 맞이한 그가 나에게는 인간으로 화한 신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케네디를 발견한 나는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자 결심했다. 나에게는 완벽해질 수 있는 완벽한 가능성이 있었다.

 

- 25p -

 

 

하버드, 내 도전의 대상이 결정되었다. 내게 있어 기다림이란 준비의 시간을 의미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 공부를 뒷전으로 미룬 채 TOEFL 책을 사다가 무조건 암기하기 시작했다.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에서 본 케네디의 흉상은 시간과 공간의 먼 간격을 뛰어넘어, 한국에서 온 소년에게 묻고 있었다.

 

삶을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야망을 펼칠 용기가 있는가? 누구보다도 멋지게 역사 속으로 뛰어들 자신이 있는가?’

 

- 33p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연히 공부밖에 없었다. 아침 7시에 눈을 뜨면 수업이 시작되는 9시까지 예습을 했다. 그리고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수업, 3시에서 6시까지는 축구 연습(운동은 필수과목이었다), 6시에서 7시까지 저녁식사, 7시에서 9시까지는 자율적인 단체 학습 시간, 그리고 9시가 지나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면 매일 밤 1~2시까지 복습을 했다.

 

- 37p -

 

 

나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선다는 것은 어린 내 자존심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낮에 몇 시간씩 운동장을 달려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 공부, 또 공부...

 

- 38p -

 

 

민영환 선생께서 하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라의 힘이 되어라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한 그 말씀이 내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대다수 유학생들처럼 서투른 솜씨로 기숙사 방에 태극기를 그려 붙여놓고 나는 그 말씀에 격려 받고 기운을 얻으면서 어둡고 긴 시간을 헤쳐 나갔다.

 

- 41p -

 

 

뉴포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외적인 호화로움이나 부()가 아니라 더글러스 씨의 손짓 하나 말투 하나에서조차 은은하게 풍기던 겸손과 품격, 그리고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는 예절이었다.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겸손과 여유, 더글러스 씨는 그런 삶의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 43p -

 

 

하버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학문적인 권위와 시간의 연륜뿐이다. 독서에 여념이 없는 찰스 강가의 학생들과 하버드 야드를 점령한 자신감에 찬 얼굴들. ‘엘리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절감하고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둘러본 하버드의 기억은 이후 애비 스쿨에서의 남은 기간과 초우트 입학 후의 고된 학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퇴색하지 않는 꿈을 우리는 하나씩 지니고 있다. 어떤 역경과 장애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멈추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젊은 영혼을 지켜주는 진보적인 힘의 원천이 바로 그와 같은 꿈이다.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엠마 골드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특히 나 같은 몽상가에게는 더욱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 45p -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다른 외국 학생들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 하루에 3시간씩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축구 연습도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 몰래 공부를 했다. 영어사전을 아예 통째로 외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하루에 150~200 단어씩 암기해 나가기 시작한 이 시도는 초우트 시절 초기까지 계속되어 사전의 A에서 P 항목에 이르는 어휘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나는 작문 리포트를 돌려받으면 선생님의 코멘트 하나하나, 단어 용법 하나하나를 모두 암기해 절대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지독한 공부...

 

- 47p -

 

 

12: 초우트, 그리고 어머니

 

 

기숙사는 밤 1030분이면 완전히 소등을 했다. 나는 기숙사 사감의 순시가 시작되는 11시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순시가 끝나면 일어나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장소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 1시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때로는 꼬박 밤을 새우면서 새벽 3~4시가 될 때까지 화장실을 지키곤 했는데, 그러다가 4시에 청소부가 들어오면 할 수 없이 옆의 샤워실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하면서 책을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때는 공부한 것을 머릿속에 하나씩 떠올리며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 59p -

 

 

그날 나는 천 개의 눈을 가졌다는 버딜론의 밤을 처음으로 보았다. 반짝이는 수많은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나는 몸서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오늘이 너무도 찬란하게 느껴졌고, 희미하게 사라져감을 거부하고 순간의 연소를 선택했다는 믿음이 나를 기쁘게 했다. 살아가는 한순간 한순간, 어느 누구도 어떤 경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눈부시고 당당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날아보고, 삶의 정상에도 올라보며 항상 꿈과 낭만을 잃지 않고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별이 눈부신 밤, 이 세상 어느 곳엔가 그 별들을 바라보며 똑같은 꿈을 꾸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모든 피곤과 외로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저 천 개의 눈들처럼 초롱초롱한 빛을 발하는 눈동자들이 이 밤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밤, 내가 깨어 있음이, 내가 나의 삶을 위해 정진하고 있음이 더없이 행복했다.

 

- p60 -

 

 

'언젠가 이 고통을 떨쳐버릴 날이 올 것이다. 5분 만에 밥을 먹어치우지 않아도 되고, 소화제를 마치 비타민인 양 들이 삼키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 앉아 몇 시간씩 활자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 그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나보다 못난 녀석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공부를 마치고 잠든 학우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 내가 택한 방법은 무조건적인 암기였다. 결국 나는 신약전서 300페이지를 무작정 외우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매일 밤마다 외우고 또 낮에 다시 반복해서 외우다 보니 300페이지를 거의 모두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서적의 관련 문장들도 모두 통째로 암기해 버렸다.

 

 

라이언은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다른 외국 유학생들이 1년 동안에도 이루지 못했을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9월 초만 해도 단어 선택도 제대로 못했고 문장 구조나 문법 등등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한 단락을 쓰고 나면 바르게 쓴 단어보다 틀린 단어들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11월 중순이 되자 갑자기 명확하고 어법에 맞는 유창한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단어 테스트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았고 어휘력은 나날이 풍부해졌다. 이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 63p -

 

 

내 영어 실력이 갑자기 향상된 것은 교과서를 모조리 암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어쨌든 밤마다 화장실에서 외우고 또 외웠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지금도 내 영어 실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지금도 나는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무조건 외우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문장들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외국어 학습이야말로 요령이나 비책이 통하지 않고 그저 정직한 노력만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문장력은 선생의 지시를 잘 따르고 좋은 문장들을 외워서 활용하는 것으로 실력이 향상되지만 말하기와 듣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회화 학습의 제1원칙은 겁을 내지 말고 무조건 외국인과 많이 접하고 대화하라는 것이다.

 

- 64p -

 

 

학문이나 지적 재산에 대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직성, 그것은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학문이라는 힘든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는 것, 그것이 그 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확실히 배우게 된 교훈이다.

 

- 66p -

 

 

나는 타 후보들이 득표 활동에 여념이 없을 때 방에 틀어박혀 연설문 작성에 온 힘을 쏟았다. 세련되고 간결한 어투와 여유 있는 제스처를 습득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강렬한 연설구를 찾기 위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집을 뒤졌고, 케네디의 연설을 녹음한 테이프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로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연설문은 교열을 위해 뉴욕에 있는 김정원 박사에게로 보내졌다. 김 박사는 바쁜 와중에도 교정된 원고를 격려의 편지와 함께 속달로 부쳐주셨다. “자랑스럽다. 한국 학생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사명감으로 임해라. 건투를 빈다.”

 

- 78p -

 

 

지도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책임을 수반한다. 그 책임을 등한시할 때 돌아오는 것은 대중의 날카로운 비판뿐이다. 그러나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행위라는 명제를 내가 깨닫고 있었을 리 만무했다.

 

- 81p -

 

 

13: 자아와의 타협

 

 

나는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굳건하게 지킬 심지가 굳은 학생들만이 휴학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은 분명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물론 다수의 미국 학생들은 한국의 학생들과 같이 순수하고 건전하다. 그러나 일단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탈선의 길로 빠져들 수도 있다. 때문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를 간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지켜준 것은 나의 이었다. 그릇된 길로 접어들려고 할 때마다 내일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내 어깨와 발목을 붙잡아주었다. 또 하나, 나를 지켜준 것이 있다면 부모님의 지극한 정성과 그에 대한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 94p -

 

 

나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성적 문제와 SAT(대입 학력고사) 준비로 고투하고 있었다. 3학년 3학기에는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 전에도 하루 5~6시간 정도는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부터 그 시간은 7~8시간으로 늘어났다. 학교 시험과 SAT 준비 기간 동안에는 하루에 10~11시간까지 공부를 해야 했으니 결국 수업시간을 빼고 나면 평균 수면시간은 4~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 98p -

 

 

라이언은 놀라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학기말 시험에서 평균 점수보다 11점이 높은 95점을 맞아 나를 놀라게 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에 관한 그의 에세이는 이해력, 조직력, 표현력, 통찰력 등 모든 면에서 그가 이 클래스 학생들 중 최고의 작가임을 보여주었다. 내년에 나는 헤밍웨이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최우수작문상 후보로 추천할 생각이다. 게다가 놀라운 일은 가산점을 더 주겠다는 내 도전에 응해 그가 빚어낸 완벽한 성과이다. 라이언은 내가 초우트에 재직한 지난 7년 동안 시도해 온 이 시험에서 합격한 두 번째 학생이다.

 

- 112p -

 

 

14: 젊은 삶, 젊은 초상

 

 

세상에 유일한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라는 마사 그레이엄의 명언을 적은 종이를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던 나는 하버드 합격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 131p -

 

 

나는 전체 졸업생의 1%안에 드는 석차에 포함되었고, 영어와 미술에서 우등상을 받게 되었다. 입학 초기에 힘겨웠던 영어에서 상을 받게 되었음은 내겐 뜻 깊은 일이었다. 투지 하나로 영어와 고된 싸움을 벌여왔고, 기어이 그 장벽을 깬 것이다.

 

- 141p -

 

 

돌아올 수 없기에 소중한 추억, 그것이 감사했고, 소중했을 뿐이다. 그저 내게 주어졌던 젊음의 1막과 그 성공적인 결말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1막보다 훨씬 원색적이고 격동적인 2, 3, 아니 무수한 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젊음은 그토록 풍요롭고 의미 있는 약속들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 144p -

 

 

21: 꺼져가는 불빛에 맞서

 

 

삶의 한 계단을 오르고 난 후 찾아오는 허무와 상실감, 다음 계단을 찾지 못하는 내 자신의 무력감에 한없이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성장의 대의문, 존재와 존재자와의 차이에 대한 하이데거의 질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빠져 들어갔다.

 

- 153p -

 

 

또다시 내게는 젊음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식은 피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 155p -

 

 

케네디는 내 삶에 특별한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그는 내 생활의 규범이었고, 내 삶의 지표를 설정해 준 벗이었다. ‘젊음, 진보, 용기의 살아있는 상징이며, 그의 존재는 아직까지 많은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 케네디는 <용기의 윤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어떠한 고난과 장애와 위험, 그리고 압력이 있더라도 그것이야말로 모든 인간 도덕의 기본인 것이다.”내 삶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 가든, 그가 상징했던 젊음과 용기, 진보의 정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가치들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전진시키는 유일한 힘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163p -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라는 칸트의 질문...

 

- 187p -

 

 

22: 생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쉬며

 

 

동포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가 국민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가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이해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역사는 이 그림자를 보살필 줄 아는 지혜와 그로부터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 몇 달 동안의 경험이 내게 선사한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성공을 향한 엘리트 의식만으로 가득했던 내 세계관의 중심을 새롭게 채운 진리였다.

 

- 195p -

 

 

내가 생각하는 진보란 유심론이나 유물론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정치 세력이 정의로운 방법에 의해 형성되는 것, 국가의 적극 개입으로 빈부 격차가 최소화되는 것, 교육과 문화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 그리고 민족 간의 세력 다툼이 세계 평화를 향한 도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변혁을 추구하는 삶은 항상 힘들고 고통스럽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진보된 세상,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섰다가 꺾여야만 했는가? 마키아벨리 마저도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려는 것만큼 실행하기 어렵고, 성공하기 힘들고, 다루기 위험한 것은 없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역사는 변화를 위해 초인이나 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참다운 인간을, 세상을 이해하고 개선시키고자 하는 진보적인 인간을 요구할 뿐이다. 권력과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역사와 인류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 이상의 실현을 위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의 인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진보해야 했다. 브라우닝의 표현처럼 신의 것도, 야수의 것도 아닌 오직 인간의 의무인 진보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대학 3학년 2학기 말, 나는 목적지에 휘날리는 깃발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했고 초조했다. 나에게는 배우면서 행할, 뛰면서 생각할 의무가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모든 변혁과 진보에는 그 시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 196p -

 

 

도서관에서의 하루는 도서관 문을 나서는 시간의 늦어짐과 피로도에 비례해 보람도 커진다. 언젠가 집으로 가는 길에 나 혼자 언덕에 오른 일이 있다. 눈 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관은 물론이거니와 각 동의 연구실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밤을 밝혀 진리를 좇는 젊음의 열기가 그곳까지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섞인 밤기운의 흐뭇함, 하루를 열심히 살았을 때의 충만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초우트에서 소리지르는 날내뱉었던, 억제된 욕망과 누적된 스트레스의 분출구 같던 그 괴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함성이었다. 내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때 외칠 수 있는, 출항을 앞둔 선박이 대양을 향해 울리는 고동 소리 같은 것이었다.

 

- 205p -

 

 

아무리 어두워도 아침을 기다릴 여유는 있다. 바다를 품고, 하늘을 잡자. 그래도 답답하면 차가운 바람에 얼굴 내밀어 씻으면 그만이다. 가식과 미련, 두려움과 초조함을 모두 버리고 내 삶의 광채를 지켜야 한다. 만남을 소중히 함이 곧 삶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길임을 익힌다. 순수한 가슴으로 모두를 대하고 만남의 기쁨을 전하자. 벗들과 어울려 웃고, 마시고, 고민하는 시간의 행복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따뜻한 지성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우정이야말로 삶의 향기인 것이다.

 

 

추억이란 돌아올 수 없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항상 불완전하기에 애틋하다. 과거를 사랑하며 미래를 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을 아쉬워하지 않고서는 내일 추억을 견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오늘을 충분히 그리워하면, 내일, 오늘이 덜 그리울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젊을 수 없게 된 순간에도 내 자신의 젊은 모습을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젊음을 잃은 것이 아닐 게다. 그렇기에 나는 멈추지 않는 삶으로 나의 젊음을 기억하려 하는 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시린 바람 한 줄기가 가슴에 와 꽂힌다. 석양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깨달았던 슈바이처, 그리고 삶은 지나치게 짧다던 니체를 잊을 수 없다. 한 번 웃어제끼고 이것이 바로 삶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지난 시간에 대한 추억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포부,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삶은 밝고 건강한 사람들의 것임을 안다.

 

 

다시 혼자로 돌아서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고민하는 삶, 그리워하는 삶, 꿈을 꾸는 삶, 이 모두가 평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 얼마나 긴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젊음에 대한 믿음과 포부 하나로 삶을, 세상을 직시하려 하는 것이다. 어차피 한 판 붙기 위해 태어난 삶이 아니던가. 쓰러져도 쓰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부서져도 부서지지 않은 모습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쉬리라.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하며, 많이 꿈꾸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삶이 흐른다. 멈추지 않고 찬란히 흘러내린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다. , 나의 젊음이 눈부시다.

 

- 211p ~ 212p -

 

 

23: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하버드 전체가 미쳐가는 시간, 1년에 두 차례 찾아오는 3주일, 그곳에서 혈색 좋은 인간이라곤 단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배수진을 친 기분으로 3주를 버텼다. ‘2기통의 엔진으로 440마력을 내는 것이 인생이라고 밀러는 말했다. 나는 그날 1기통으로 880마력을 내려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었다. 마치 병든 사람처럼 창백한 안색의 동료들을 생각하자 다시 한 번 쓴웃음이 떠올랐다. ‘?’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시작이 반, 하지만 남은 반이 아직도 45장이나 되었다.

 

- 220p -

 

 

A, A, A, A, A 다섯 과목 모두 A였다.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뿌듯한 만족감이 차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지낸 인고의 시간, 거기에 바쳐진 내 젊음의 열정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 221p -

 

 

천성적인 문과 체질인 나는 논술을 즐겼고, 논리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원칙 또한 가지고 있었다. 첫째, 논술은 반드시 명확한 주제를 가져야 하며, 그 주제가 끈질기게 유지되어 서론과 결론이 큰 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둘째, 논술의 스타일은 칼로 자르듯 명쾌하고 정확해야 하며, 은유와 직유 등 문학적 기법은 최소화해야 했다. 셋째, 자료의 인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나, 정보의 서술적인 나열은 절대 피해야 했다. 넷째, 어렵고 지루한 일이지만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대 이론을 모두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논술의 결론은 본론의 요약에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미래 연구의 방향 및 과제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결국 논술은 끊임없는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기술인 동시에, 주관적 견해와 객관적 근거를 융화하여 합리적인 논거를 이끌어내는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 228p -

 

 

24: 지성인의 반열에 서서

 

 

방황과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축복,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목표를 성취한 희열이 나를 감사하게, 또 들뜨게 했다. 8년간의 노력, 그 결말치곤 만족스러웠다. 나는 마침내 하버드의 ‘10,000 marching men', 그리고 나아가 지성인의 반열에 함께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의 2막은 내려지고 있었다.

 

- 235p -

 

 

아버지. 난 그 분을 떠올릴 때마다 내 삶을 나누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한다. 꿈과 믿음을 나누고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나의 다른 한쪽인 것이다. 그러나 그 한쪽은 내 삶을 결정하거나, 이끌어가려 하지 않는다. 무한한 애정과 인내로 내 전진과 이탈, 그리고 또 전진을 지켜볼 뿐이다.

 

- 236p -

 

 

"아내와 자녀만을 돌보는 남자의 삶은 아버지 대에서 끝나야 한다. 너는 민족과 인류에 기여하는 참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뜻을 품은 남자는 하루 이틀 멸시당하고 실패해도 결코 배고프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의 근본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사명감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을 잊을 수가 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외길을 고집해 온 삶, 순수하고 원대한 꿈을 아들의 가슴에 키운 삶, 그리고 애정과 믿음으로 가정과 인간관계를 지켜온 삶, 아버지의 삶에서는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없는 향기가 우러난다. 나의 젊음으로 흉내낼 수 없는 품위와 사랑의 기운이 담겨 있다. 나는 자녀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바꾼 아버지의 희생과 용기를 망각할 수 없다. 내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졸업논문을 헌정했다.

 

- 239p -

 

 

이들은 최고라는 천편일률적인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무모함을 버리고, 개인적인 관심사와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 신축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모든 분야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양 얕고 편협적인 지식을 쌓느니, 실제로 전문 분야를 찾아 그 분야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인자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하버드는 이 같이 숨쉴 틈 없는 진보의 욕구와 창의적인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정력적인 곳이었다.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집단의 환부를 직시하고 비판적인, 그러나 건설적인 자세로 해결의 묘책을 찾아내려는 젊은이들의 기상이 꿈틀거리는 곳이었다.

 

- 241p -

 

 

핵심적인 차이는 우리 교육이 현시점의 우열 평가에 치중한다면, 미국의 교육은 미래의 가능성을 점쳐 기대와 책임감을 불어넣어 주는 교육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에리히 프롬은 교육의 목적을 젊은이로 하여금 그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현재의 노력과 성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그 학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보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일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더 발전시키고, 수많은 수재천재들이 도중하차하는 불행을 막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완전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가? 플라톤에서 듀이까지, 지브란에서 브르통까지, 그리고 리빠이에서 루쉰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 245p -

 

 

나는 미국 교육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내 자신의 지적 성숙을 위해, 그리고 내 세계관의 창조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교수들의 지식과 지혜를 빼앗으려 발버둥쳤으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어떤 사상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던져버렸다. 배움과 경험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나로 하여금 감상을 배제할 수 있도록 했고, 경험이라는 미명으로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나의 목적을 이뤘다. 하버드의 꿈을 이뤘으며, 세계의 지성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포부도 이뤘으며, 미국의 엘리트 계층과 상류 사회에 동양인으로서 당당히 참여해 보고 싶은 야심도 이뤘다. 중국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미국인들과 강의를 들었으며, 일본인들과 술을 마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를 피부로 느끼며, 그러나 우리가 이뤄야 할 세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절감하며 더 큰 인간이 되기 위해 정진했다.

 

 

하지만 그렇게 8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미국 엘리트 문화의 정수를 섭렵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내가 미국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세계의 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게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에, 그들이 나의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해 주었기에 이곳을, 또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베푼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이곳을 철저히 활용했듯, 그들도 나를 필요로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나는 한국의 시민도, 미국의 시민도 아닌 세계의 시민이고 싶다. 돈이나 입신의 문제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정의와 자유,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싶고, 진보의 이념을 신봉하고 싶다. 세계의 지성들과 대화하고, 세계의 젊은이들과 일하고, 세계의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무한한 인간이고 싶다. 그러나 불가피한 한계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게 될 때 내 마음이 한반도에 머물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8년간 나는 혼자였고, 그리고 함께였다. 홀로 고뇌하고 공부하고 깨달아왔지만, 주위의 애정과 기대로 나의 삶을 지켜왔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감정은 자식 된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친구에 대한 믿음, 연인에 대한 애정, 지지자에 대한 진솔함, 비평가에 대한 초조함과 후원자에 대한 부담감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역사 속의 남성으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어머니는 아들을 참 인간으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두 분의 논의는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나 모두 당신의 자녀에게 삶을 헌신하셨다. 당신의 명예와 부를 쏟으셨고, 양심과 희망을 거셨고, 목숨보다 소중한 꿈을 안겨주셨다. 당신께서 아들의 생에 혹 걸림돌이라도 될까 염려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선과 덕이 아들의 삶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 날까지 정도를 걸어오셨다.

 

 

성아 누나와 나리, 때로는 질투도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왔다. 아름답고, 우수하고, 남자로 태어난 나보다 더 큰일을 해낼 수 있는 두 사람, 언젠가는 그럴 재목들이지만 나를 위해 자신들의 가지를 거두고 있다.

 

- 246p ~ 248p -

 

 

사람들은 나의 삶과 꿈을 믿어주었고, 내가 미완성의 지성으로 머무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 주었다. 이제 나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이들의 믿음은 미완성인 오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의 무한한 꿈에 대한 것임을 안다. 나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진보한다. 설사 삶이 힘들고 때로 좌절을 경험할지라도 무릎 꿇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보하지 않는 모든 것은 퇴보한다는 기번의 명제를 가슴에 새기고 결코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베풀려 한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는 성경의 말씀을 잊지 않으며,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이들의 사랑과 믿음을 나의 동료 후배, 그리고 후손에게 돌려주려 한다. 이들의 기대가 나를 통하여 세상에 전파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협력의 역사를 세우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 249p ~ 250p -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고 싶은 꿈이었다. 남과 다르고 남보다 우수하고 싶은 꿈이었다. 케네디를 좇아 가시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꿈이었다. 그 꿈을 붙잡고 이렇게 달려왔다. 달려온 길을 돌아볼 틈도 없이, 후회나 미련을 느껴볼 여유도 없이 오늘을 살아왔다. 미래를 사랑하는 마음은 현재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라는 카뮈의 충고를 십계명처럼 여기고 나의 삶을 사랑해 왔다.

 

 

이제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은 사람 위에 서고 싶은 꿈이 아니다. 사람과 함께 사람을 위해 사람의 역사를 이룩하고픈 꿈이다. 그 꿈은 제2의 누가 되고 싶은 꿈이 아니다. 나의 삶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삶과 역사에 대한 독특한 의무를 이행하고픈 꿈이다. 그 꿈은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꿈이다. 결과의 꿈이 아닌,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꿈, 가시적인 완벽이 아닌, 내면의 완벽을 추구하는 꿈인 것이다.

 

 

가슴으로는 우주를 품고 눈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지만, 나의 발은 이 땅 위에, 손은 내 동료의 어깨에 놓여 있다. 오늘 밤엔 만나지 못한 모든 이들과 정겹게 대화하며 우정을 나누고 싶다. 그러나 내일 아침엔 타오르는 욕망을 안고 삶과 역사, 조국과 세계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려 한다. 내가 받은 축복을 동족의 삶을 밝히는 데 얼마나 풍족하게 사용했느냐에 의해 역사는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로버트 케네디의 날카로운 지적이 나의 양심을 밝히고...

 

 

내 노력의 몇십 배를 돌려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던 축복, 이제 그 축복을 다시 몇 십 배로 세상에 돌려줘야 할 책임이 나에게는 있다. Sic itur ad astra, 젊은 나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역사 속의 영생을 얻고 싶은 나의 포부, 그런 나에게는 세계의 시민이고 싶었던 소크라테스의 소망과, 설 곳을 주면 세상을 움직여 보이겠다던 아르키메데스의 야망마저도 왜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꿈은 생명보다 소중하다. 생명을 잃음은 육체의 죽음이지만 꿈을 잃음은 내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은 꿈의 아름다움을 믿고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자의 것이다. ‘작은 점들이 합쳐 선이 된다. 삶이란 선은 어떤 극한 상황이나 환희의 순간도 모두 점으로 포용하는 것. 어려움도 기쁨도 다 원시안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어머님의 지혜가 가슴에 파고든다.

 

 

삶의 여로에서 이제까지 택해온 길, 그리고 앞으로 택할 길, 그 선택에 의해 짜여져 왔고, 그리고 짜여질 삶의 틀.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삶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굵은 포부이다. 작게는 사랑받는 인간이기 위한, 크게는 죽지 않는 신의 아들이고 싶은 꿈, 생명의 위대함의 대명사가 되고픈 그 뜻을 잃지 않으며 진보해 나갈 것이다. 어제를 보았고, 오늘을 사랑하기에 내일 또한 두렵지 않다는 윌리엄 화이트의 용기를 잊지 않으며.

 

 

8년 하고도 더 긴 세월,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과 나를 사랑해 준 이들. 이제 나는 더욱 성숙하고 더욱 강인한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난다. 중국 대륙, 그리고 내 조국 대한민국. 그곳에 내일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쉬며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이다. So help me God.

 

 

모든 일에는 어찌 그리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인지.

 

, 삶의 구석구석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 252p ~ 254p -

 

 

그 후 : 검증의 삶으로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학력지상주의에 사로잡히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걸어온 길이 삶이라는 질문의 모범답안이라고 생각지도 않으며, 나와 같은 길을 밟으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내 작은 이야기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이들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꿈과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동기가 된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의 벽을 얕잡아볼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필요하다.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문,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들어가게 되어 있다. 혹자는 우뚝 선 한 사람의 그림자에는 주저앉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고 얘기한다. 반대로 현실의 벽 앞에 꿇어앉은 많은 이들 곁에는 벽을 타고 오르는, 그리고 벽을 넘어선 이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벽을 오르는, 그리고 벽을 넘어선 이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보의 원동력을 찾아야 하고, 만일 이 책이 그 힘의 작은 원천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 266p -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란 항상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어떤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느냐에 따라 사회에서 각자가 맡을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이 달라질 것이라는 명제는 내게 일종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했다.

 

- 270p -

 

 

나는 2년여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학업과 사업의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해야 했다. 학자로서 이론에 충실하거나, 예술가로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지 않는 한, 나는 더욱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춰야만 했다. 법을 알아야 했고, 숫자를 알아야 했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개발해야 했으며,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이가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이상과 능력의 격차를 최소화해야 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상을 낮출 필요는 없었다. 단지 나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했을 뿐이다.

 

- 274p -

 

 

도전에 대한 의욕은 후천적으로 길러졌다. 안락하고 평범한 삶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 역시 환경과 교육이 내게 준 선물이다.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아쉽게도 결혼과 더불어 안정적인 삶의 추구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반면 나는 결혼과 함께 힘들고 어려운 리스크를 택할 수 있는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종교와 부모님이라는 절대불변의 정신적인 축을 보유하고 있었던 내게 아내와 가정이라는 또 하나의 안정된 축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가정은 나로 하여금 도전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와 어떤 실패와 좌절이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 것이다.

 

 

내 아내는 조용하고 향기롭다. 가식을 혐오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겉과 속을 구분하는 지혜를 지녔다. 한국과 미국을 공부하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곁에 있음으로도 나를 가득 채운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모두 아내를 닮았으면 하는 소망을 한다.

 

 

나는 내 자녀들이 도전적인 삶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한국을 알고 세계를 알며, 항상 깨어 있는, 그리고 전진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반면 내 아내는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 281p -

 

 

이제 나는 모든 결정에 앞서 내 아내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인지를 반드시 자문한다. 그리고 내리는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지 않은가. 이로써 도전을 위한 내 정신적인 기틀은 완성이 된 셈이다.

 

- 282p -

 

 

숫자는 경영의 기본이다. 기업과 경영자는 숫자로 말해야 한다. 숫자를 모르며 경영을 논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며, 숫자에 문외한인 이가 경영의 총책임을 맡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

 

 

수입과 지출을 점검하고, 자산과 부채를 운용하며, 투자 및 인수합병을 지휘해야 하는 최고경영자가 재무와 회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맹인이 교통정리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리만브라더스에서 숫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익히기 위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이재(理財)에 밝은 이들이 있다. 흔히 돈을 버는 감각이 뛰어나다고도 한다. 감각이란 지식과 경륜을 통해 형성되는 후천적인 것이다. 축적된 역량이 받혀주지 않은 감각은 행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같은 우연이 그릇된 자신감과 합쳐질 때, 행운이 불운으로 반전되는 시간은 순식간에 불과하다. 경륜은 장기적인 틀 속에서만 습득이 가능하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 주어진 혹은 떠도는 기회와 맞부딪쳐야 한다. 지식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기간에도 노력의 강약에 따라 습득의 정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단기간 재무, 회계, 금융, 그리고 무엇보다도 총체적인 경영에 관해 최대한의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매진했다.

 

 

짧은 기간 내가 인수합병의 진리를 터득했다면 어불성설이다. 다만 인수합병의 중요성과 과정, 그리고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사안들에 대해 지식을 쌓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 모든 배움에는 단계가 있다. 인수합병 과정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단계가 있다면, 그 후에는 인수합병의 틀을 만들고 그 시행을 총 지휘하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수합병의 원리를 깨닫고 그 성패를 예측할 수 있는 단계가 있을 것이다. 나의 목적은 1단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숫자와 테이터 분석의 요령을 배우고, 재무적으로 건강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를 구분하는 눈을 갖추며, 기업 인수합병의 동기와 과정을 익히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였다.

 

- 284p ~ 285p -

 

 

나의 젊음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했다. 물질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이어야 했으며, 망설임 없이 나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했다. 또한 여러모로 부족한 나였지만, 그런 내가 경영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는 일이어야 했다.

 

 

나에게는 반드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언론사 경영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현대 문명의 꽃이라는 언론, 특히 권력과 공익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 온 대한민국의 언론사를 경영하고자 하는 희망은 사회적 가치와 부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가져볼 만한 꿈이었다.

 

- 290p -

 

 

언론은 정보와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이다. 그렇다면 언론인의 올바른 자세는 높은 곳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낮은 곳에서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인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는가. 대중을 다스리고, 대중을 설득하고, 대중을 교육하는 모습은 언론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다. 대중의 욕구를 존중하여 지식과 정보를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서비스하는 전문가의 정신이 바로 동시대에 필요한 언론인의 모습이 아닐까.

 

 

언론사의 경영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첫째, 기업의 존재 명분인 수익 창출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주주와 임직원, 그리고 독자를 위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며, 이를 더욱 좋은 상품과 인재의 개발을 위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며, 이를 더욱 좋은 상품과 인재의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해야 한다. 둘째,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Chief Sales Officer(최고 영업사원)의 업무, 언론사의 대표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시장으로 나와 대중과 만나야 하며, 자사의 상품을 망설임 없이 홍보하고 판매해야 한다. 셋째, ‘경영편집의 유기적인 관계를 직시하고 존중해야 한다. 오너 경영인은 이를 인지하고 편집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경영인과는 다른 차원의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나는 비난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모든 개혁을 스스로 행하고 결과를 통해 검증받는 것이 젊은 경영인의 바른 자세라고 믿었다.

 

- 296p ~ 297p -

 

 

서른 하고도 셋, 나는 경험의 길을 끝마치고 검증의 길로 들어섰다. 어떤 실수나 실패도 경험이라는 편리한 틀 속에서 미화할 수 있는 권리를 나는 남들보다 일찍 포기했다. 이제 나의 실패는 많은 사람들을 더불어 불행하게 만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결과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내 역량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홀로 서기에는 내 그릇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으며, 오만과 자신감의 차이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아집과 의지를 착각하지 않으며, 분명 경륜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음 또한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deo omnipotenti, 하나님의 능력과 판단을 믿고, 내가 그의 명을 지켜 행하는 한, 그가 나와 나의 사우들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하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가족과 회사, 아직 그들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꿈을 저울질할 수는 없다. 가정과 회사에 대한 내 의무를 다한 후, 새로운 목표를 영위하려 한다. 이제부터의 모든 목표는 홀로 선 모습만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자아만족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누린 치열한 삶의 축복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오늘이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선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어떻게 내일을 이기적으로 영위할 수 있겠는가. 지나온 길은 한낱 추억거리가 아닌 내 현재와 미래의 일부여야 한다.

 

 

혹자는 내게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내일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이치조차 모르는 내게 겸손하기 위해 노력할 여유가 있겠는가. 3년을 배우면 세상에 적이 없고, 3년을 더 배우면 반걸음 떼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제 두드리고, 또 두드려 건너는 다리도 두렵기만 하다. 끊임없이 배우고, 망설임 없이 청하는 자세는 겸손하기 위한 모습이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 숨쉬기 위한 노력, 항상 깨어 있기 위한 노력보다 힘든 일은 없다. 치열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arcanum arcanorum, 그 원초적인 비밀은 무엇인지... 미약한 우리들이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굳은 믿음과 바른 판단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자 하는 희망보다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강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목표가 아닌가? 후회 없는 삶이란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이로부터 뻗어나오는 순간순간의 옳은 선택이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꿈을 신봉하고, 원칙을 지키며, 사고와 행동을 병행하는 길뿐일 게다.

 

 

위대한 삶을 누리라고 한다. 꿈과 함께 깨어 있고, 꿈과 함께 고뇌하며, 꿈과 함께 전진한 이들이 있다. 한 길을 걸어 정상을 취하고 부와 명예를 획득한 그들을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 꿈의 목적과 실현이 자아의 만족이 아닌 이웃과 사회, 세계에 대한 기여라는 틀 속에서 빛을 발할 때, 성공한 삶은 비로소 위대한 삶으로 승화한다. 위대한 삶은 나누는 삶이 아니라 베푸는 삶이다. 제로섬이 아니라 플러스알파의 결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여하고픈 꿈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다. 진보하는 세상이며 중흥하는 세상이다. 일생을 바쳐 추구할 의미요,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진보라 함은 내일의 목적지를 향한 거창한 전진이 아니라, 오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소박한 노력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오늘에 대한 처절하고 진지한 고민, 그 아픔을 동력으로 삼아 더 가득한 내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다. 하루를 보내며 하루만큼의 빚을 질 수는 없는 일. 나의 부족함을, 기업의 부족함을, 그리고 사회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일은 외롭고 힘든 책무이다. 그러나 성장이란 결국 시간과 고독을 다스리는 여유를 갖추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변함없이 젊은 꿈을 꾸며, 그 꿈속의 작은 목표들을 하나둘씩 열심히 이루어간다. 매일 아침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새삼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내 젊음이 변함없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제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 내가 쓰고 싶었던 말, 내가 쓸 수 있는 말은 모두 꺼내놓았다. 만약 나의 작은 삶에 또 다른 글이 입혀져야 한다면 이는 내 몫이 아닐 게다. 이제 글로써 나누려 하지 않고 삶으로써 나누기 위함이다.

 

- 300p ~ 302p -